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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를 고르고 나면 다음 고민은 분쇄도다. 같은 원두라도 얼마나 곱게 가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도구별로 적정 굵기가 다르다는 걸 모르고 아무렇게나 갈아서 마시는 경우가 많다. 분쇄도가 왜 중요한지, 도구별로 어떻게 맞추면 되는지 정리해봤다.
분쇄도와 추출 시간의 관계
분쇄도는 원두 입자 사이의 틈을 결정하고, 그 틈이 물이 통과하는 속도를 정한다. 입자가 굵으면 틈이 넓어서 물이 빠르게 지나가고, 반대로 곱게 갈수록 틈이 좁아서 물이 천천히 통과한다.
추출 시간이 짧으면 원두 성분이 충분히 우러나지 못해 신맛과 밍밍한 맛이 두드러지고(과소추출), 반대로 시간이 길어지면 쓴맛과 떫은맛까지 딸려 나온다(과다추출). 그래서 추출 방식마다 "적정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에 맞춰 분쇄도를 조절해야 한다.
에스프레소처럼 25~30초 만에 짧게 뽑는 방식은 곱게 갈아서 짧은 시간 안에 충분히 추출되게 하고, 콜드브루처럼 12~24시간씩 담가두는 방식은 아주 굵게 갈아야 그 긴 시간 동안 과다추출을 피할 수 있다.
추출 도구별 적정 분쇄도
도구마다 맞는 분쇄도가 다르다. 감이 잘 안 잡힌다면 소금·설탕 입자 크기에 비유해서 기억해두면 편하다.
- 에스프레소 — 밀가루보다 살짝 굵은 정도, 25~30초에 추출을 끝내는 걸 기준으로 맞춘다
- 모카포트 — 에스프레소보다 굵고 핸드드립보다는 고운, 중간~고운 정도
- 핸드드립 — 설탕 결정 정도의 중간 굵기, 2분 30초~3분 30초 추출 기준
- 프렌치프레스 — 굵은 바다소금 정도, 3~4분 우려내는 침출식이라 굵어야 한다
- 콜드브루 — 가장 굵게, 12시간 이상 우리는 방식이라 굵어도 성분이 충분히 우러난다
같은 핸드드립이어도 케멕스처럼 필터가 두꺼운 도구는 조금 더 굵게, 융드립처럼 촘촘한 필터는 조금 더 곱게 잡는 식으로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한두 단계씩 조절하면서 맛을 맞춰가는 게 낫다.
너무 곱거나 굵게 갈았을 때 생기는 문제
분쇄도가 도구에 안 맞으면 증상이 꽤 뚜렷하게 나타난다.
너무 곱게 갈았을 때는 과다추출로 쓴맛·떫은맛이 강해지고, 핸드드립이라면 물이 잘 안 빠져서 드리퍼에 물이 고이는 현상도 생긴다. 프렌치프레스에서는 필터 사이로 미세한 가루가 빠져나와 컵 바닥에 앙금이 가라앉기도 한다.
반대로 너무 굵게 갈았을 때는 과소추출로 신맛이 튀고 맛이 밍밍해진다. 핸드드립에서는 물이 순식간에 빠져버려서 추출 시간을 다 못 채우는 경우가 많고,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면 아예 압력이 안 걸려서 커피가 그냥 주르륵 흘러내리기만 한다.
한번은 핸드드립용으로 갈아둔 원두를 그대로 프렌치프레스에 썼다가 컵 바닥에 가루가 한가득 가라앉아서 마지막 한 모금을 버린 적이 있다. 도구를 바꾸면 분쇄도도 같이 바꿔야 한다는 걸 몸으로 배운 셈이다.
어떻게 고르면 될까
집에 그라인더가 없다면 원두를 살 때 카페나 로스터리에 추출 도구를 말하고 분쇄를 부탁하면 된다. 대부분 "핸드드립용으로 갈아주세요", "모카포트용이요" 하면 알아서 맞춰준다.
다만 분쇄된 원두는 홀빈보다 산화가 훨씬 빨라서, 며칠 안에 다 마실 양만 그때그때 갈아 오는 게 낫다. 여러 도구를 번갈아 쓰거나 매번 신선하게 갈아 마시고 싶다면 그라인더를 하나 장만하는 것도 방법이다.


수동 핸드밀은 가격 부담이 적고 조용해서 자취방에서 쓰기 좋고, 전동 그라인더는 분쇄 속도가 빠른 대신 소음이 있는 편이다. 자주 여러 잔을 내린다면 전동, 하루 한두 잔이라면 핸드밀 쪽이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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